[한국수소환경신문]
이중정체성 위에서 서 있는 나
홍성학(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나는 종종 스스로를 ‘두 개의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기자로 살아온 세월 동안, 나는 사실 두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하나는 기록하는 사람, 다른 하나는 내 안의 이야기를 표출하는 사람으로, 바깥을 향해 뛰는 발걸음과 내면의 마음 사이에서, 나는 늘 어느 쪽도 완전히 놓지 못한 채 살아왔다.
■ 기록하는 나와 사유하는 나
현장을 누비며 인터뷰를 하고,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문자로 정리해 세상에 내보내는 일. 그것이 기자인 나의 첫 번째 정체성이다. 그러나 기사 한 줄을 쓰고 돌아서는 순간, 또 다른 내가 고개를 든다.
“이 이야기는 너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답을 재촉하지 않으면서도 날카롭게 묻는 내면의 목소리. 나는 단순한 보도자료가 아닌, 사람들의 인간다움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늘 마음의 결을 더 살피려 했다.
■ 경계 위에서 배우는 것들
이중정체성은 혼란을 주기도 했다. 때로는 냉정한 객관성을 지켜야 하는 내가 안쪽의 감정에 흔들렸고, 때로는 감성적으로 깊이 빠져들어야 하는 순간에 기자로서의 균형감이 머리를 잡아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그 사이의 틈이 내 삶의 가장 넓은 공간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을 취재하면서도, 그들의 침묵을 이해하려고 귀를 기울였고,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사람의 진실된 마음이라는 또 다른 면을 보려고 애썼다.
이중정체성은 결코 나를 분열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넓게 만들었다.
■ 두 개의 나를 잇는 지점
취재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이 ‘한 방향’으로만 흘러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두 얼굴, 두 감정, 두 역할을 지닌 채 살아간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 확인하고 다듬는다는 점을, 나는 기자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읽는 관찰자이고, 사실을 기록하면서도 마음의 결을 기록하려는 서정적 문학가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정체성은 때로는 부딪히지만, 결국 서로를 지지하며 나라는 존재의 무게를 견고하게 만들어왔다.
■ 결론 — 이중정체성은 나를 가능하게 했다
이제 나는 이중정체성을 더 이상 ‘두 개의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개가 아니라, 두 점을 연결하는 하나의 선이다. 기록하는 나와 사유하는 나, 현실을 보는 눈과 마음을 보는 눈이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갈 때, 나는 비로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분명해졌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경계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경계는 더 이상 흔들림의 장소가 아니라, 나의 글이 창작되고,탄생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두 세계를 잇는 글을 쓰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