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0(월)
  • 전체메뉴보기
 
  • [시평] 이삭빛시인(본명: 이미영문학박사/세계학술원 아카데미 명예인문학 박사) 국립 NSSU대학 겸임교수, 문학평론가
[한국수소환경신문]

KakaoTalk_20251010_161728949.jpg

       윤애란 시인

 

윤애란의 『나팔꽃』,

감정의 변형과 존재의 품격

 

시평 이삭빛시인(본명: 이미영문학박사/세계학술원 아카데미 명예인문학 박사)

국립 NSSU대학 겸임교수, 문학평론가

 

꽃이 된 감정, 존재의 변형

 

윤애란의 「나팔꽃」은 단순한 식물의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부재와 기다림의 고통이 응축된 감정의 형상이며, 한 송이 꽃으로 변형된 존재의 서사다. ‘한없이 그리워하며 애가타다 나팔꽃으로 변해버린 슬픈 님이여’라는 첫 구절은, 사랑의 결핍이 존재를 변화시키는 순간을 시적으로 포착한다. 나팔꽃은 여기서 단순한 꽃이 아니라, 그리움의 화신이며, 감정의 물질적 전이이다.

 

밤이면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아침에 문을 열어주는 나팔꽃은, 사랑의 침묵과 희망의 조화를 보여준다. 시인은 이 꽃을 통해, 사랑이 단절된 자리에서도 피어나는 감정의 지속성과 시간의 리듬을 노래한다. 나팔꽃은 말하지 않지만, 그 피어남 자체가 사랑의 언어다.

 

 

한없이 그리워하며

애가타다 나팔꽃으로

변해버린 슬픈 님이여

 

밤이면 어둠의 꽃으로

숨어있다

아침에 문을

열어주는 나팔꽃 당신

 

누가 우리의 사랑을

갈라 놓았을까?

 

기다림에 이루지

못한 사랑

눈물씨가 떨어져

나팔꽃이 되었네

 

이리치이고 저리치여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나팔꽃당신

 

당신의 큰 나팔속에

안겨

영원히 백년해로 하고 싶네 – 윤애란의 『나팔꽃』 전문

 

기다림의 미학과 감정의 화학

 

‘기다림에 이루지 못한 사랑, 눈물씨가 떨어져 나팔꽃이 되었네’라는 구절은 이 시의 중심 주제를 드러낸다. 사랑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라는 역설적 진실을 담고 있다. 눈물은 고통의 흔적이지만, 그것이 씨앗이 되어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 슬픔은 미학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정서는 ‘수적천석(水滴穿石)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처럼, 지속적인 기다림은 결국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라는 한자성어와 맞닿는다. 시인은 나팔꽃을 통해, 사랑의 부재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감정의 품격을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애절함이 아니라, 고요한 인내의 미학이다.

 

나팔꽃과 백년해로, 환상의 피난처

 

‘당신의 큰 나팔속에 안겨 영원히 백년해로 하고 싶네’라는 마지막 구절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 환상 속에서 완성되는 장면이다. 나팔꽃의 나팔은 단순한 꽃잎이 아니라, 사랑의 공간이며, 감정의 피난처다. 시인은 그 속에 안겨 백년해로를 꿈꾸지만, 그 꿈은 현실의 부재 속에서 더욱 처연하게 빛난다.

 

이 장면은 오스카 와일드의 말과도 겹친다. 그는 ‘우리는 모두 하늘을 바라보지만, 그 중 몇은 진흙 속에 발을 담근 채 바라본다’고 했다. 시적 화자는 바로 그 진흙 속에서 피어난 나팔꽃이며,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피어나는 사랑의 상징이다. 그 사랑은 닿지 못했기에 더욱 선명하고, 피어나지 못했기에 더욱 깊다.

 

침묵의 저항, 피어남 너머의 품격

 

‘이리치이고 저리치여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나팔꽃 당신’이라는 구절은, 사랑의 고통을 견디는 존재의 단단함을 보여준다. 나팔꽃은 흔들리지만 꺾이지 않으며, 피어남 자체로 사랑의 진실을 증명한다. 시인은 이 꽃을 통해, 감정의 지속성과 존재의 품격을 동시에 노래한다.

 

이 시는 우리에게 사랑의 완성보다 사랑의 인내를 묻는다. 나팔꽃은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 담긴 고요한 저항은 삶의 태도이자 감정의 철학이다. 결국, 사랑은 피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킴은,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는 한 송이 꽃처럼, 존재의 품격으로 피어난다. 그 품격은 말이 아닌 침묵으로 남아, 독자의 마음에 오래도록 스미게 한다.

 
태그

BEST 뉴스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윤애란의 『나팔꽃』, 감정의 변형과 존재의 품격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