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0(월)
  • 전체메뉴보기
 
  • 시평 이삭빛시인(본명: 이미영문학박사/세계학술원 아카데미 명예인문학 박사) 국립 NSSU대학 겸임교수, 문학평론가
[한국수소환경신문]

KakaoTalk_20251010_170213574.jpg

도종환 시인
 
도종환의 『담쟁이』

함께 오르는 삶, 도종환의 「담쟁이」가 묻는 존재의 윤리

 

시평 이삭빛시인(본명: 이미영문학박사/세계학술원 아카데미 명예인문학 박사)

국립 NSSU대학 겸임교수, 문학평론가

 

벽 앞에서 멈추지 않는 존재

 

도종환의 「담쟁이」는 단순한 자연의 관찰을 넘어, 인간 존재의 태도와 삶의 윤리를 되묻는 시이다. 시인은 ‘벽’을 절망의 상징으로 설정하고, 그 앞에서 담쟁이가 보여주는 침묵의 움직임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 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구절은, 외부의 장애보다 내면의 포기가 더 큰 벽임을 암시한다.

 

담쟁이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은 언어보다 깊은 사유를 유도한다.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벽을 ‘절망’이라 이름 붙이고, 그 이름에 스스로 갇히는가. 담쟁이는 그 이름을 바꾸지 않는다. 대신, 그 위를 기어오르며 질문을 남긴다. ‘이 벽은 정말 끝인가?’ 시인은 이 식물의 움직임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 설정한 한계와 그 너머를 향한 존재의 본질을 되묻는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의 『담쟁이』 전문

 

 

함께 나아가는 삶의 윤리

 

이 시의 핵심은 ‘넘는다’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담쟁이는 벽을 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담쟁이는 벽 앞에서 멈추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는 구절은, 개인의 고군분투가 아닌 공동체의 연대 속에서 절망을 감싸는 방식을 보여준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동행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나누고, 고통을 나누며, 희망을 나누는 일이다. 담쟁이는 그런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벽도, 여럿이 함께라면 덮을 수 있다. 시인은 이 식물의 생태적 지혜를 통해, 인간 사회의 단절과 고립을 넘어서는 길을 제시한다. 연대는 이 시에서 생존의 조건이자, 절망을 넘는 유일한 방식이다.

 

침묵 속의 연대, 말보다 깊은 책임

 

담쟁이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은 윤리적이다. 그것은 소리 없는 연대이며, 조용한 저항이다. 시인은 담쟁이를 통해, 말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구절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의 방식이다. 담쟁이는 결과를 향해 달리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본질을 따라 벽을 오른다.

 

이 침묵은 단순한 무언이 아니다. 그것은 묵언지행(默言之行), 말없이 행하는 삶의 방식이다. 담쟁이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시인은 이 침묵을 통해, 인간이 말로 가리는 진실을 드러낸다. 말하지 않음은 회피가 아니라, 가장 깊은 책임이다.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지녀야 할 품격이며, 공동체의 윤리이다.

 

담쟁이의 질문, 우리를 향한 되묻기

 

「담쟁이」는 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묻는 시다. 시인은 담쟁이를 통해 우리에게 되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벽을 설정하고, 그 앞에서 고개를 떨구는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절망을 이름 붙이고, 그 이름에 굴복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벽을 향해 한 뼘이라도 움직인 적이 있는가.

 

담쟁이는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남긴다. 그것은 ‘넘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함께 넘으려 했는가?’이다. 시적화자는 그 질문을 통해, 인간 존재의 태도와 윤리를 되묻는다. 결국, 「담쟁이」는 벽을 넘는 시가 아니라, 벽 앞에서 함께 나아가는 삶을 말하는 시다. 그리고 그 삶은, 지금도 우리 마음의 벽을 조용히 흔들고 있다.

 

이 시는 우리에게 말한다. 절망은 혼자 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손을 잡고, 함께 마음을 나누며,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넘을 수 있는 것이다. 담쟁이는 그 침묵 속에서, 가장 뜨거운 연대의 언어를 남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방식임을 깨닫게 한다.

태그

BEST 뉴스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도종환의 『담쟁이』 함께 오르는 삶, 도종환의 「담쟁이」가 묻는 존재의 윤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